제 11회 신앙의 올바른 식별법

 

신앙의 올바른 식별법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

사이비(유사) 종교와 정통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인 차이는 ‘믿는 대상’에서 결정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는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나와 어떻게 상관하는가?

 

1. 역사 안에 오신 하느님

 

그리스도 신앙은 신화가 아닌 역사 안에 오신 하느님을 믿는다.

성탄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저 먼 하늘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나약한 인간의 본성을 당신 것으로 하시고

심지어 죽을 운명까지도 당신 것으로 하시고 몸소 인간이 되어 오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은 ‘임마누엘 하느님’ 곧 인간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한 처음에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분, 하느님이셨다. 성탄은 인간을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의 그 사랑은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의 온 삶을 통해 실현되었다.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으며 소외된 이들에게 따뜻한 사랑으로 다가가

그들의 친구, 이웃이 되어주셨고 믿음을 회복시켜주셨으며,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하셨다.

주님의 기도는 입으로만 외워야 할 기도문만이 아니라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 사이의 사랑의 관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초대장’인 것이다.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주신 사랑의 계명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이는 버거운 짐이나 의무감으로 지켜야 할 계명이 아니라, 당신께서 하느님 아버지와 나누시는 사랑의 관계로 초대하시는 말씀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이처럼 사랑은 계명이나 사랑의 관계로, 자녀의 체험으로 초대하는 초대장이다!

예수님의 모든 사명은 이것에로 집약된다. 곧 우리가 모두 당신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신적 본성,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그 사랑은 ‘끝까지’(요한 13,1) 한 사랑이었다. 파스카 사건 곧 수난, 죽음, 부활을 통해 그 사랑의 절정을 이루셨고, 그 사랑으로 인간을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셨다.

 

2. 우리 안에 실현되는 구원

 

육화(성탄)와 파스카(수난-부활) 사건은 우리 밖에서 일어난 옛날의 사건이면서도,

지금 우리 안에 실현되는 오늘의 사건이기도 하다.

당신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교회의 믿음과 각자의 믿음 안에서

예수님의 육화와 파스카는 말씀과 전례를 사는 우리 안에서 새롭게 일어난다.

그 먼 거리를 뛰어 넘어 우리에게 오신 하느님의 사랑이,

그 어떤 것도 남김없이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이

말씀을 읽는 우리 마음 속에, 성사에 참여하는 우리 몸 안에 새롭게 일어난다.

 

우리의 삶은 ‘이미 실현된 구원’과 ‘장차 이루어질 완성’ 사이를 걷는 나그네 길이다.

예수님께서 실현시키신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다스리심은

교회 안에서,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 실현된다.

‘신화(deificatio)’, 그것은 허무맹랑한 유토피아적 망상이 아니라 각자의 삶, 인격 안에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의 과정이다.

마치 곡물이 시간이 지나며 좋은 술로 익듯이, 맛좋은 포도주처럼 변화하듯이

우리의 인격이 예수님과 같이 겸손하고 온유한 인격으로 변화하는 것, 그분처럼 넓은 품을 품는 것, 세상의 중심이 ‘나’가 아닌 하느님이 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사는 것이다.

 

3. 선교의 의미

우리가 부여받은 선교 사명은 사람들을 성당으로 데려오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참여하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의 친교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선교란 우리가 체험한 하느님의 그 사랑을 전하고 증언함으로써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고, 그분의 자녀가 되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이 모두는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성령께서 이루시는 일이다. 그분이 하시는 일은 예수님의 업적과 현존을 지금 여기서 현재화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 하고 부르며 부자(부녀)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신적 본성에 참여하여 하느님 자녀로 살아가도록, 자녀됨 안에서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4. 한국교회 신앙 선조들의 예

정약종의 [주교요지]와 정하상의 [상재상서]에는

창조하시고 보살피시는 분, 죄와 악으로부터 구원하시는 분, 백성을 끊임없이 성화시키시는 분에 대한 인식과 체험을 명확히 갖고 살았다.

내가 믿는 분이 누구시며, 어떻게 사는 것이 그분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느님과 교회 공동체를 위해 온 삶을 바칠 수 있던 것은 그분들이 하느님을 교회 안에서, 삶 안에서 실제로 만나 알고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름다운 순교로 삶을 봉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같은 신앙으로 초대되고 있다.

그분들이 그릇된 신앙을 거슬러 참된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던 것처럼 신흥 종교에 대한 공부는 우리의 신앙이 더 정화되고 우리가 믿는 하느님을 더 잘 알도록 그분과 더 깊은 관계를 맺으라는 더욱 따뜻하고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가라는 도전이며 초대인지도 모른다.


 
<방송 시간>

 

10월 3일 토 23:20

10월 5일 월 14:20

10월 8일 목 04:20

10월 9일 금 00:20

10월 9일 금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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