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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기획특집

(7) 벨기에 루뱅대학교

교황청이 바티칸 밖에 세운 최초의 대학

2004.01.04발행 [755호]

교황청이 바티칸 밖에 세운 최초의 대학


▲ 1. 자전거를 타고 강의실로 이동하는 학생들. 왼쪽 건물은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의 자료관이다. 2.루뱅 도심 광장에 있는 `지혜의 샘` 분수대 동상. 벅찬 학업량을 익살스럽게 풍자한 젊은이들의 재치가 웃음을 자아낸다.3. 아늑한 분위기의 중앙도서관. 도서관 건물은 밖에서 보면 영주의 화려한 대저택같다.
가톨릭대학교-평화신문 공동기획 [세계 유명 가톨릭계 대학을 가다]
(7) 벨기에 루뱅대학교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기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루뱅대학교(Katholieke Universiteit Leuven)는 여러 면에서 흥미롭다.

 루뱅이라는 도시 안에 대학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대학이다. 상점과 음식점은 물론 관공서까지도 학생들을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루뱅을 흔히 '대학도시'라고 부른다.

  인구 3만5000명 중 대학생은 약 2만7000명. 나머지는 교직원부터 환경미화원까지 어떤 식으로건 대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주민이다.

 또 현존하는 가톨릭계 대학 중 교황청이 바티칸시티 밖에 설립한 최초의 대학으로 578년 역사를 자랑한다. 서유럽 신학·철학의 중심지, 에라스무스가 주축이 되어 16세기 인문주의의 꽃을 피운 곳,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들이 공부하러 와 있을 정도로 공학연구가 활발한 대학…. 그런데도 국가 지원이 풍부해 학비는 연간 500유로(한화 73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대학도시 풍경은 기차역에서부터 이채롭다. 역 앞 빈터에는 도시 인구수만큼 자전거가 끝도 없이 줄지어 있다. 도보로 30~40분 거리에 도시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곳곳에 흩어져 있는 강의실로 이동하는 데는 자전거가 제격이다.

 도심 광장에 있는 '지혜의 샘' 분수대는 대학 상징물. 한 손에 책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컵으로 머리에 물을 붓고 있는 동상이 외부인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한 학생이 "쉴틈 없는 공부 때문에 뜨끈뜨끈 달아오른 머리를 이 지역 특산물인 맥주를 부어 식히는 모습"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젊은이들의 재치있는 풍자에 웃음이 나온다.

 루뱅대학의 엄격한 학사관리는 외국에까지 소문이 나 있다. 고교 졸업고사에서 일정학력을 인정받은 학생은 누구나 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그러나 1학년 기말고사에서 50%, 2학년 기말고사에서 20% 정도가 성적미달로 중도 탈락한다. 재시험과 유급은 다반사다. 들어오는 문은 넓지만 나가는 문은 상당히 좁다. 그래서 시험기간이 돌아오면 도시가 쥐죽은 듯 조용해지고, 시험이 끝나면 도시가 축제장으로 변하는 게 루벵의 독특한 광경이다.
 
  유학생 김연희(39, 신학부)씨는 "학업부담과 시험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는 학생들의 자살사건이 종종 발생한다"며 "루뱅대학 2학년 강의실 열기는 우리나라 고3 교실 열기보다 더 뜨겁다"고 말했다.

 국제교류협력처장 뤽 델베케 박사는 "루뱅대는 벨기에뿐만 아니라 북해 연안의 저지대 국가(Low Countries,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 지방)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며 "설립 초기부터 수준높은 교육을 지향하며 쌓아온 학문적 명성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델베케 박사는 명성을 유지하는 첫번째 비결을 "전통과 미래의 접목 노력"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까지도 유효한 유럽대학교육의 특성은 교수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도제(徒弟)식 교육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대학을 나왔으냐가 아니라 어느 교수 밑에서 공부했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루뱅대는 10년 전부터 그 오랜 전통에 '독립적 학습법(Guided Independent Learning)'을 과감하게 덧씌우고 있다. 학문의 발전속도에 비춰본건대 교수가 모든 것을 아는 시대는 지났다. 따라서 과거처럼 교수 입만 쳐다보고 있는 학생은 뒤쳐질 수밖에 없다.

 그는 "독립적 학습법은 교수가 방향을 제시하면 학생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방법"이라며 "우리는 직업인 양성과 연구자 양성을 구분해서 교과과정을 마련하는데 이 학습법은 연구과정에서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루뱅대는 또 유럽대학에서는 드물게 영어강의를 병행한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국제화 전략의 일환이다. 엄청난 투자로 교육 질을 끌어올리는 미국 대학들과 경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학과 철학 전통을 자랑하는 가톨릭계 대학인데도 이공계 분야에서 두드러진 강세를 나타내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대학측은 오랜 역사 속에서 유럽 과학기술문명을 이끈 인재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자랑한다. 현대 해부학의 아버지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물리화학자 피터 쟌 민켈러, 수학자 겜마 프리시우스 등은 루벵대가 자랑하는 역사적 인물이다. 요즘도 신소재와 반도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세계적 반도체 설계기술연구소인 아이멕(IMEC)연구소가 이 대학에 있다.

 이공계 대학은 우리나라 광릉수목원에 버금갈 정도로 울창한 헤벌리 숲 속에 있다. 딱딱한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정서순화를 위해 19세기에 조성한 숲이다.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로 수풀이 우거진 교정을 거니는 학생들을 보면 이곳이 수목원인지, 캠퍼스인지 헷갈린다.

 교황 마르티노 5세가 설립한 루뱅대는 6세기 가까이 가톨릭적 전통을 이어오고 있지만 벨기에의 대학제도 특성상 교황청과 밀접한 관련은 없다. 대학 운영비를 전적으로 국고지원에 의존하는 국립대학 성격이 짙다. 벨기에 주교회의 의장이 명예총장직을 맡는 정도다.

 또 독어권인 이곳 루뱅대(K.U.Leuven)에서 남쪽으로 40㎞ 떨어진 곳에 1968년 완전 분리된 루뱅 라느브(Louvain-la-Neuve, 불어권) 대학이 있다.

   1960년대 학생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플레미시계(독어권) 학생들이 왈룬계(불어권) 학생들을 몰아낸 것이다. 도서관 장서까지 정확히 반으로 나눈 대학 분리는 뿌리깊은 민족적 감정에 기인한다.

 최익철(은퇴)·김성태(한국교회사연구소장)·정태현(전주 팔마본당)·리순성(글라렛선교수도회)· 김병로(예수회)신부 등이 이곳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브뤼셀=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 인터뷰=국제교류협력처장 뤽 델베케 박사
 델베케 박사는 "루뱅대는 교황청과 외형적 연결고리는 약하지만 578년 역사속에 흐르는 전통은 가톨릭 교육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대학역사와 현황을 소개해달라.
 "현 대학 본관은 600년 전 직물공장이었다. 15세기초 직물산업이 위기를 겪자 이 지방 영주가 인재양성에 소명의식을 느끼고 교황청에 공장을 기증해서 대학교육이 시작됐다. 신학대학은 7년 후인 1432년에 문을 열었다. 루벵은 프랑스·독일·네덜란드 같은 강대국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부침(浮沈)이 많았다. 제1차 세계대전 때도 독일군에 의해 도서관이 불타 장서 30만권이 잿더미로 변했다. 다시 세운 도서관도 제2차 세계대전 때 소실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장서 430만권을 자랑하는 도서관을 갖고 있다. 우리 대학에서 교수로 봉직하다 교황직에 오른 하드리아노 6세는 현 요한 바오로 2세 이전의 마지막 비이탈리아계 교황이었다. 현재 14개 학부, 50개과로 구성돼 있다. 의대는 5개 직속, 3개 부속병원 포함 2057개 병상을 보유하고 있다.

 -가톨릭 교육이념을 어떻게 교육현장에서 실천하는가.
 "예를 들어 의대 박사과정에서도 윤리·철학을 타대학보다 강도높게 중시한다. 이공계 학문은 전문화될수록 인문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게 대학 입장이다. 물론 그 과정에 학문적 충돌이 있겠지만 그 충돌에 대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공부다. 가톨릭계 대학에서 의료윤리·생명윤리를 제대로 모르는 의사를 사회에 내보내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공대 및 의대 연구실적은 유럽 최고 수준이다."

 -세계 가톨릭계 대학들과 교류는.
"많은 대학에서 루뱅대 운영비결을 배우기 위해 방문한다. 한국 가톨릭대학교와도 학생·교수·연구실적을 교류하길 원한다. 효과적 교류방법은 서로 왕래하면서 공부하고 선진화된 시스템을 체험하는 것이다. 김원철 기자
  
협찬: 서울대교구 가톨릭경제인회-(주)동남아태종합건축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