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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가톨릭

[정진석 추기경] 청주교구장으로서의 업적은

cpbc 이힘 기자(lensman@cpbc.co.kr) | 입력 : 2021-04-28 17:00 수정 : 2021-04-28 19:21

[앵커] 정진석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이기 이전에 청주교구장을 지냈습니다.

정진석 추기경은 1970년 6월 25일 로마 우르바노대 유학 시절 당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청주교구장 주교로 임명됐습니다.

우리 나이 39세, 청주교구의 첫 번째 한국인 교구장로서 정 추기경은 어떤 업적을 남겼을까요.

이힘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1970년까지만 해도 청주교구엔 한국인 사제라곤 서품 3년차 사제 6명뿐이었습니다.

당시 청주교구장은 미국 메리놀회 출신의 제임스 파디 주교.

교구 사제 대부분이 정 추기경보다 한참 연배가 높은 외국인 사제들이었습니다.

메리놀회 사제를 모두 포함해도 교구 사제 수가 25명에 불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 사람이 콧대 높은 서양 신부들을 통솔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하던 시대였습니다.

정 추기경은 모든 걱정을 하느님께 내어맡기며 교구 성장과 발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청주교구는 당시 사제 생활비를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그래서 본당의 재정적 자립이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가 해외원조에 기대고 있던 시절이어서 신자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냉담교우 증가 문제가 대두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 추기경은 본당의 재정 자립과 사제 양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22개에 불과했던 본당 수가 청주교구장 임기를 마칠 때엔 53개로 두 배 이상 늘었고, 사제 수는 25명에서 105명으로 4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사제 양성과 재정 자립의 밑거름은 철저한 근검절약이었습니다.

정 추기경은 그때부터 종이 한 장, 물 한 컵 함부로 버리지 않는 절약습관이 몸에 밴 덕에 서울대교구장 시절, 그리고 은퇴 이후에도 평생 절약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매년 1권씩 책을 집필해온 정 추기경은 원고는 늘 광고지 뒷면이나 이면지에 썼습니다.

교육 사업과 의료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정 추기경은 본당에 적극적으로 가톨릭 유치원을 개설하는 한편, 충북 옥천에 성모병원 건립에도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학자 주교답게 ‘평신도 지도자 교육’과 ‘성가정 운동’이란 두 축을 기반으로 평신도 재교육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평신도 재교육 프로그램은 본당 사목회장과 공소 회장들을 대상으로 한 재교육 과정입니다.

청주교구의 성장과 발전은 세계 각국 교회의 도움과 지원이 더해진 덕분이기도 합니다.

성심 농아학교와 맹인학교 건립 기금이 모자랐을 때 정 추기경은 독일 미제레오르(Misereor)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메제레오르는 인종과 국적, 성별을 넘어 인간의 권리를 침해받는 이들을 돕는 구호단체로 1959년 독일에서 설립됐습니다.

정 추기경은 미제레오르와 독일의 또다른 해외 원조 기구인 미씨오(Missio)에 편지를 보내거나 직접 방문해 도움을 청했습니다.

순교자들의 영성을 발굴하고 성지를 개발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정 추기경은 특히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목자였습니다.

최양업 신부의 라틴어 편지를 번역하고 최 신부의 사목적 거점인 배티성지를 조성해 성역화 작업에 나선 것도 정 추기경 업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청주 무극본당 주임이던 오웅진 신부가 최귀동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시작한 꽃동네는 도움을 받던 청주교구가 더 어렵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자 콩 한 쪽이라도 ‘가진 것을 나누는 교회’로 변화한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 추기경은 1998년 사제서품식을 겸한 청주교구장 환송미사에서 자신은 한 일이 없다며 모든 공을 사제들에게 돌렸습니다.

<정진석 추기경 / 청주교구장 환송미사, 1998년 6월 23일>
"하느님의 은혜로 28년 전에 청주주교로 임명받고 오늘까지 살려주시고 또 여러분 위해서 미력이나마 정성을 바칠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동안에 제가 교구 발전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한 것이 별로 없어요. 아까 강론 때 말씀드린 대로 저는 신부님들 많아지도록 사제 양성만 했어요. 그것만 노력했어요. 우리 교구 발전을 위해서 일하신 것은 우리 신부님들이십니다."

CPBC 이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