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회 18회 문성희 요세피나/자연 요리 연구가

저는 1950년 3월에 우리나라 최남단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부산에서 가톨릭 재단에 학교설립을 하셨습니다.

대양공업 고등학교라고요. 그렇게 자라났는데 아버지 학교 그만두시고

어머니가 저희들을 다 공부를 시켜야만 되는 상황이 돼서,

먹고사는 것도 너무 힘든 그런 시절이죠.

저희어머니가 요리강습을 시작한 게 1970년대 초,

명목은 무료강습이고 거기 오시는 분들이

예를 들어서 도너츠 튀기는 것을 배운다하면

거기서 베이킹파우더나 계량컵이나 계량스푼 이런 것을 사도록 하는 거예요.

그것을 남사당패처럼... 그런 기구들을 싣고

일주일은 이쪽 군에서 하고 일주일후에는 다른 군에서...

이런 식으로 순회강습을 했던 시절에 제가 20살 남짓 했을 때

제가 맏딸이니까 어머니를 도와서 따라다녔던 기억들이 있고요.

 

진짜 살아있는 음식이 어떤 건가,

또 내가 요리학원을 하면서 가르친다라는 게

무슨 자격증만 따는 것으로는 저는 만족이 안 되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좀 더 멋있고 좀 더 맛있고 제대로 된 음식,

아마 그런 것에 대한 본능적으로 그런 고민들이 굉장히 있었고

제가 음식을 꾀 잘하는 사람으로서 그때 당시에는 부산에 있을 때

국제신문, 부산방송, 이런 데 칼럼이나 이런 것을

제가 거희 다 담당할 정도로 그렇게 했었는데...

 

그러면서 제가 하고있는 이 음식이라는 일이

이게 정말 양심의 문제이기도 했어요.

이디오피아 아이들이 식량이 없어 죽어간다는데

음식을 이렇게 사치스럽게 먹어도 되는가

이런 고민들이 또 마음 한편에 있었고,

내면에는 항상 고민이 있었던 거죠..

 

그러면서 어느 날 제가 그냥 늘 하듯이 생선요리를 했는데

그날 그 생선요리에서 비린내가 나고

먹고 나니까 온몸에서 비린내가 나서 견딜 수가 없게 되었어요.

회는 즐겨서 먹었는데 나중에는 회에서도 비린내 나고

생선을 못 먹게 되고 고기도 먹으면 몸이 아프고

술 한 잔 마시면 몸이 아프고 이렇게 되니까 먹을 수가 없었어요.

 

가공을 적게 한다라는 것은 사실 씻는 것 외에는 다 가공이거든요.

써는 것도 가공에 속하더라고요

그래서 써는 것도 최소화 시키고 불도 적게 쓰고

그래서 기본적으로 불을 적게 써야 화석연료를 적게 쓰는 것이고

내가 적게 먹어야 쓰레기도 적게 나가는 것이고...

제 삶의 대해서 자존감이 좀 더 커졌다고 해야 할까요?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지구에 해를 끼치지는 않을 수 있구나

이해하게 되고 얻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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