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사회사목

[교부들의 사회교리] (36)연극 같은 인생

현세의 돈과 권력은 가면에 지나지 않아

2019.09.08발행 [1530호]

▲ 최원오 교수



“배우들이 실제로는 왕과 장군, 의사, 연설가, 교수, 군인 등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닌데도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오르는 것처럼, 현세에서 가난과 부는 가면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극장에 앉아 왕의 가면을 쓰고 있는 배우를 볼 때, 그가 운이 좋다고 여기지도 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처럼 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가 상인이거나, 아마도 밧줄 제조자나 구리세공인이나 그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의 역할이나 의상만 보고 그가 운이 좋다고 여기지 않고, 이런 외적인 것들로 그의 사회적 신분을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실제 처지 때문에 그를 업신여깁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여러분이 앉아 있는 극장처럼 여기십시오. 그리고 많은 부자를 볼 때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있는 배우들을 보듯이 그들이 실제로 부유한 것이 아니라 부자의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무대에서 왕이나 장군을 연기하는 사람이 종종 하인이거나 시장에서 무화과나 포도를 파는 사람임이 드러나듯이, 부자도 이따금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임이 드러납니다.

여러분이 그의 가면을 벗기고 그의 양심을 드러내며 그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면, 그의 덕행이 상당히 빈곤하다는 것을 가끔 알게 될 것입니다. 곧, 그가 세상에서 신분이 가장 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극장에서처럼, 저녁이 되고 청중이 자리를 떠난 뒤, 왕이나 장군 역할을 했던 배우들이 무대 의상을 벗고 밖으로 나가면, 숨겨져 있던 그들의 모습이 모든 이에게 드러나고, 그러면 그들의 신분도 훤히 드러납니다.

마찬가지로, 죽음이 찾아와 이 세상이라는 연극이 끝나면, 모든 사람은 부나 가난이라는 가면을 벗고 다른 세상으로 떠납니다. 모두가 각자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으면, 더러는 진실로 부유하고 더러는 가난하며, 더러는 고귀한 신분이고 더러는 하찮은 신분임이 드러납니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라자로에 관한 강해」 2,3 . 하성수 옮김)



부와 가난의 가면이 벗겨질 때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들은 저세상에서도 부자 신분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교부는 인생은 한바탕 연극과 같고, 이승의 돈과 권력은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러준다.

세상 재물과 명예는 인간의 영속적 본질이 아니다. 인생이 저물고 연극이 끝나면 우리 모두 무대 저편에서 부와 가난의 가면을 벗게 될 것이다. 부자와 권력자의 탈을 쓰고 사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이들도 머잖아 그 두꺼운 철가면을 벗고 벌거숭이 민낯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되리니, 그때에는 배역이 아니라 오로지 행실에 따라 심판받을 것이다.



차별과 허영의 가면을 스스로 벗은 사람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오직 사랑만이 영원히 남는다. 그러므로 허망한 껍데기를 부러워하지 말고 영원히 스러지지 않는 덕행을 쌓는 데 힘쓰라는 것이다.

성인들은 이미 이승에서 차별과 허영의 가면을 스스로 벗어버린 사람들이다. “누나는 어머니가 하녀들과 신분의 차별을 내세우지 않고, 밥상과 숙소와 생필품을 공유하게 했습니다.”(「성 마크리나의 생애」 11)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교부가 전하는 어머니와 누나 성녀 마크리나의 삶의 방식에 관한 증언이다. 하녀를 속량해 준 복자 정약종의 삶 또한 이에 못지않다.



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