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여론사람들

[평화칼럼] 삶의 향기

이창훈 알폰소(편집위원)

2019.09.22발행 [1531호]



‘한국 교회에는 신심은 있지만, 영성이 없다.’

20~30년 전 한국 천주교회에 대한 신학ㆍ사목적 성찰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종종 들을 수 있었던 말이다. 한국 교회는 열심히 활동하고 활기가 넘치지만 뭔가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영성이라는 것이다.

‘영성(靈性)’ 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신령한 품성이나 성질’이라고 설명한다.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서는 영성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느님과 자기 자신, 이웃들,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자기 초월적인 사랑으로 개방되는 한 사람 또는 어느 단체의 믿음이 지닌 살아 있는 표현”이라고 다소 장황하게 설명한다. 역시 이해하기 쉽지 않다. 긴 수식어를 다 빼버리면 ‘믿음이 지닌 살아 있는 표현’ 혹은 간단히 ‘믿음의 산 표현’이라고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전적인 정의에서 벗어나 개인적으로는 영성을 ‘삶의 향기’로 이해한다. 커피 전문점에서는 그윽한 커피 냄새가 풍겨나고 푸줏간에 들어서면 비릿한 고기 냄새가 나듯이, 믿음을 지닌 사람에게는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고유한 향기가 있는 법이다. 부처에게 온전히 귀의한 불자에게서는 부처의 향기가 나고,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의지한 그리스도 신자에게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이 순리다. 그것이 영성이다. 그래서 영성을 ‘삶의 향기’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런 삶의 향기는 하루아침에 풍기지 않는다. 삶의 연륜이 쌓이면서 서서히 생겨난다. 단지 시간만 흐른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결부돼 있어야 한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어우러질 때 비로소 그 사람에게 고유한 삶의 향기가 풍겨나는 법이다.

만일 누가 30년 동안이나 그리스도 신자로서 살아왔는데 그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겉으로만 그리스도 신자였을 뿐이지 속은 그리스도인다운 삶과는 상관없이 살아온 것이다. 또 불자로서 30년 수행을 했는데도 부처의 향기를 풍기지 않는다면 부처의 제자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성은 그 사람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영성은 흔히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종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이 다 영성과 결부된다. 하지만 영성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삶의 근본, 뿌리이자 바탕이 되는 것과 연결되지 않은 외적인 드러남은 영성과 무관하다. 그 삶에서 풍기는 향기가 곧 사라지거나 바뀐다면, 그것은 참다운 삶의 향기, 참 영성이라고 할 수 없다.

20~30년 전에 심심찮게 들었던 ‘한국 교회에 신심은 있지만, 영성은 없다’는 말을 최근 들어서는 별로 듣지 못한 것 같다. 기자가 과문한 탓인지, 아니면 이제는 한국 교회에도 영성적인 뿌리가 있어서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고 있다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이제는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30년 동안 가톨릭 신자 기자로서뿐 아니라 가톨릭 매체의 기자로서 살아온 나는 어떠할까. ‘평화신문’ ‘가톨릭평화신문’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내가 쓴 기사와 칼럼들은 어떤 향기를 풍겼을까. 향기는 고사하고 엉뚱한 냄새만 풍기지 않았기를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