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여론사람들

[시사진단] 묵시록의 네 기사(최영일, 빈첸시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2020.06.07발행 [1567호]






인간의 감정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당연히. 일상 속에서 대표적인 경우는 날씨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우리의 기분이다. 하루의 햇살과 비구름, 바람과 기온에도 민감한 우리가 벌써 4개월 넘게 밖에 나갈 때는 마스크를 써라, 수시로 손을 씻어라, 타인과 거리를 두어라, 지인과도 접촉하지 말라 하는 비일상적인 요구를 지속해서 강하게 받고 이를 실천해 온 것이다. 마음의 상태가 평화롭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오랜 생활습관과 사회적 관행, 익숙한 행동을 급하게 교정해야 하는 일은 불안과 걱정, 심지어 무기력, 좌절, 공포까지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두려워하던 어떤 그림에 부합한다.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종말의 때에 나타난다는 네 기사 중 하나가 봉인 해제 됐다는 두려움이다.

“그들에게는 땅의 사분의 일에 대한 권한이 주어졌으니, 곧 칼과 굶주림과 흑사병과 들짐승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권한입니다.”(묵시 6,8)

강력한 신종 질병에 의해 인류가 멸종할 것이라는 두려움, 다양한 종말론은 인간 역사 속에 시대마다 반복되어온 스토리텔링이다. 현대에는 공상과학 문학과 영화 속 단골소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역사상 가장 강력한 바이러스와 맞닥뜨리고 있다. 코로나19가 강력한 것은 치명적인 사망률 때문이 아니라 매우 ‘지능적’으로 완급을 ‘조절’하듯 방역의 틈새를 파고들기 때문에 마치 심리전을 전개하듯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는 점에 있다. 우리 의학이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어 낼 때에야 코로나19를 떠나보내게 될 것인데 더 큰 문제가 닥쳐온다는 게 문제다. 바로 앞서 묵시록에 나온 대로 네 기사가 연이어 온다는 것이다. 역병이 돌고 공동체가 피폐해진다. 그리고 기근으로 표현된 경제공황의 후폭풍이 이어진다. 먹고살기 힘들어져 험악해진 민심을 달래야 하는 국가 지도자들은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 서로 호되게 때리기 시작한다. 전쟁이다. 이미 코로나19를 둘러싼 G2 패권국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파열음을 내고 있다. 신냉전이 언급된다. 그리고는 죽음의 지배.

이런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가 횡행한다면 인간사회는 키에르케고르적 의미에서 심리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의 노예가 될 수 있다.

분명 극복의 방향도 있다. 상호개방과 공유를 통한 세계적 인간연대, 그리고 장기전이 되겠지만,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이 등대의 불빛이다. 결국, 이 시대에도 믿음과 희망과 사랑만이 인간이 살길이다.

연일 중국과 일전불사를 외치며 세계를 불안하게 만드는 트럼프 대통령과 다르게 빌 게이츠 이사장은 말한다.

“모든 인류가 같은 편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지금의 사태는 세계대전과 같습니다.”

우리는 바이러스라는 적에 대한 경계를 인간사회 내부의 증오로 돌려서는 안 된다. 전쟁의 원칙, 분열의 결과는 항상 패배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바이러스가 가장 좋아하는 서식지는 인간사회 속 은밀한 접촉과 분열의 틈이다.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는 무서운 적인 것이다. 거리를 두되 연대해야만 역병의 기사를 물리치고, 기근과 전쟁의 기사를 막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