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칼럼] 발해 유민(遺民)과 꼬마 난민(難民) ‘쿠르디’

이상도 요한 사도(평화방송 보도국장)

2015. 10. 18발행 [1335호]

이상도 요한 사도(평화방송 보도국장)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하고 발해의 유민을 받아들여 북방에 거주하게 하였다. 또한, 북방 영토를 방어할 때 유민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발해 유민(遺民)과 관련된 기술이다. 두 문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내용이지만 그 안에는 한반도와 만주의 복잡한 국제 정세가 반영돼 있다.

934년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하자 고려 태조 왕건은 발해의 마지막 태자 대광현의 무리 수 만 명을 받아들였다. 역사학자 박종기 교수는 이런 식으로 모두 38회에 걸쳐 발해 유민 12만 6백여 명이 고려로 유입됐다고 추정했다. 이는 고려 초기 인구 200만 명의 6.3%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로 왕건은 이들을 군사자원으로 요긴하게 활용했다.

936년 태조 왕건은 경북 선산에서 후백제 신검과 후삼국 통일전쟁 승부를 가르는 최후 일전을 치르게 된다. 당시 전투에 투입된 고려군은 8만 7500명으로 이 가운데 흑수, 달고 등 여진 계통의 기병이 9500명이나 됐다.

두 달 전 터키 해변 휴양지 바닷가에서 세 살배기 시리아 어린이 아일란 쿠르디가 차가운 바다에 코를 박고 죽은 채 발견됐다. 그런데 쿠르디는 단순히 바다에 빠져 죽은 게 아니었다. 쿠르디는 내전 중인 시리아를 떠나 엄마, 아빠, 형과 함께 좀 더 안전한 땅을 찾아 고무보트를 탔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었다.

쿠르디 사진이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되면서 독일과 영국, 스페인 등 유럽 여러 나라는 자국에 들어올 수 있는 난민 숫자를 더 늘렸다. 하지만 빗장을 더 푼 게 고무적이지만 그게 전적으로 난민들에게만 좋은 것일까?

그런데 얼마 전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독일 기업인들은 난민을 새로운 기회로 보고 있다. 소상공인들은 그들이 조속히 노동 시장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이는 결국 독일이 중동이나 아프리카 난민들을 새로운 노동력 공급 창구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물론 유럽도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 독일처럼 노동력 공급 차원에서 바라보는 곳도 있지만 국경선 전부에 철조망을 쳐야 하는 헝가리 같은 나라도 있다.

선사시대, 원시시대 인류의 행적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간 모두는 한때 떠돌이, 난민, 이민자 신세였다. 그래서 성경에 그렇게 자주 ‘나그네’라는 구절이 등장하는지도 모른다.

1100여 년 전 거란과의 싸움에서 진 발해인들은 지금으로 치면 분명 ‘전쟁 난민’이었다. 그런 그들은 후삼국 통일 전쟁에서 고려군 선봉이었다. 이후 발해인들은 한반도 역사에 오롯이 고려인, 조선인, 한국인으로 녹아들었다.

세상을 바꾼 아이폰을 만든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고향은 ‘시리아’였다. 그는 미국인으로 죽었다. 지난 9월 미국 방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서 이민자들이 건설한 미국에 오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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