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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익의 뉴스공감-최익성] 전직 야구선수가 예측한 한국시리즈 우승팀은?

cpbc 오창익의 뉴스공감 기자(vigorousact@gmail.com) | 입력 : 2022-09-30 18:36 수정 : 2022-09-30 18:45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오창익의 뉴스공감>

○ 진행 : 오창익 앵커

○ 출연 : 최익성 / 전 프로야구 선수


전 프로야구 선수 최익성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 대표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최익성 선수, 프로야구 선수가 된 건 몇 년도세요?

▶94년도입니다.


▷1994년 어느 팀이셨어요?

▶삼성라이온스였습니다. 연습생으로 입단했습니다.


▷장정훈 선수가 연습생이었다고 해서 신화를 썼다고 하는데 연습생 하다가 1군으로는 언제 가신 거예요.

▶97년도에 주전 멤버가 됐어요.


▷3년 동안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셨겠네요.

▶군대도 다녀오고요. 2군에서 다듬었습니다.


▷97년에 주전이 된 건 삼성라이온스. 포지션은요?

▶중견수였습니다.


▷삼성에서 계속 선수생활을 하셨습니까?

▶97년, 98년 2년간 삼성에서 주전 생활을 하다가 98년 시즌이 끝나고 한화이글스로 트레이드가 됐습니다.


▷98년부터 한화이글스에서 뛰셨습니까?

▶98년 뛰고 넘어가서 99년부터.


▷99년부터 한화이글스 선수,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 텐데 한화이글스가 마지막 우승한 게 1999년이고요. 그때는 빙그레였죠?

▶처음이자 마지막이죠. 한화였습니다.


▷그다음부터 한화이글스는 부동의 꼴찌를 반복해서 하고 있는데 우승 멤버셨네요? 중견수고 타자로서 몇 번을 주로 치셨어요?

▶덩치랑 안 맞게 1번 타자를 썼습니다.


▷흔히 야구에서 얘기하는 호타준족이었겠습니다.

▶네.


▷낯선 분도 있고 20년 넘은 얘기여서 젊은 분들에게는 새로운 얘기일 수 있고 우승할 때 최익성 선수는 성적이 어느 정도셨나요?

▶한국시즌 1차전에 결승 홈런을 제가 쳤고 동점에서 대타 나가서 홈런 쳤고 9타수 3안타 쳤습니다.


▷시즌 때는 어느 정도 하셨나요? 3할 정도 또는 그 이상 하셨겠네요?

▶삼성에 있을 때는 20-20까지 했었고요. 홈런 20개, 도루 30개 했었고 한화에서는 올스타 베스트9까지 했습니다. 홈런 10개 넘게 치고. 한화에서 부상이 좀 많아서 시즌 중간에는 2군에 내려와 있다가 포스트 시즌 때 1군으로 올라가서 역할을 했고.


▷우승에 기여를 하신.

▶나름 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에 선수생활 어떻게 하셨어요.

▶LG트윈스로 갔습니다.


▷우승에 기여했고 지분이 있는데 왜 옮기셨죠?

▶선수협회에 지분을 더 많이 둬서요.


▷프로야구 선수협의회가 그때 생겼죠. 송진호 한화이글스 투수. 나중에 우승 승수로도 깨지지 않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전설적인 선수인데 그 선수 등 양준혁, 마해영 박충식, 박정태, 심정수 당시 가장 운동을 잘했고 쟁쟁한 스타들이 모여서 프로야구선수협의회를 만든 노조는 아니지만 선수들의 권익을 위한 조직, 어떤 취지에서 만드신 거죠?

▶어떻게 보면 불합리적인 계약이 많았습니다. 노예계약이다시피 사실 계약서를 받았을 때는 다 한자여서 저희가 계약할 당시에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데 초상권마저 저희가 못쓰니까 마음대로 찍지도 못하고 권한이 거의 없는 계약이고 최동훈 선배님부터 시작해서 추진했는데 워낙 높은 벽에 부딪쳐 있다가 시대적 흐름 속에서 여러 선배님들이 해보자고 하니 많은 사람들의 뜻을 모아서 지금 바꾸지 않으면 영원히 못 바꿀 수 있다는 각오로 후배들을 위해서 이거는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해서 함께 힘을 모았습니다.


▷최익성 선수는 언제부터 야구를 하셨어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야구를 했다는 거는 어느 중학교 야구부원이 됐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예전에는 수업에도 거의 못 들어가고 야구만 하셨던 거죠?

▶새벽, 오전, 오후, 야간. 저희는 네 탕이라고 합니다.


▷언제나 야구만 하고 있었다는 거네요. 주말에는 쉽니까?

▶일주일에 하루 정도 쉽니다. 주말이라고 다 쉬는 게 아니라 못 쉴 때는 못 쉬는 거고 한 달에 두 번 쉴 때도 있고.


▷어린 학생들에게 운동을 시키는 게 혹사 수준이네요.

▶예전에는 운동하면 다 그렇게 했습니다.


▷수업에도 못 들어가고 일반 교과과정에 참여도 못하는 상태에서 프로야구 선수가 됐는데 돈도 벌어야 하는데 구단에서 계약서를 주는데 모두 한자로 써서 준다. 그건 골탕 먹이는 거잖아요. 그때 느낌이 어떠세요. 계약서가 전부 한자일 때.

▶그때 처음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죠. 계약에 대한 인지 자체도 없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불합리적인 게 돌아오니까 잘못됐다는 걸 안 거지 처음에는 당연하게 찍고 프로에 간다는 좋은 생각, 내가 프로 선수가 된다는 거기에 젖어있지 어떤 계약을 한다는 인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나 운동하던 연장으로 프로야구 선수가 됐는데 사인하라고 하니까 내용도 안 보고 사인하는 정도. 그러나 다음 계약을 할 때 보니까 이게 문제였다. 살면서 문제였다는 느낀 거네요. 구단이나 KBO 이런 사람들의 태도는 고약하네요. 일부러 한자 잔뜩 쓰여 있는 계약서를 내민 거 아닙니까?

▶그분들의 심정은 모르겠지만 의도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거기까지는 모르겠고 계약이 불합리적이었죠.


▷연습생으로 시작해서 주전 멤버가 됐고 우승에도 기여했는데 선수협의회활동을 통해서 한화이글스에서 쫓겨나게 되시는 겁니까?

▶제가 거의 주동자이다시피해서 선수협의회 끝나면 주동자는 항상 제거를 당하니까 어쩔 수 없이 저도 팀을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한 거죠.


▷운동도 제대로 못하고 불이익을 당했겠네요.

▶조금의 불이익은 못했죠. 운동도 못하고 부상도 입고 겨울 내내 선수협 사태에 참여해서 동계훈련 참여 못하고 또 구단이나 다른 선수들한테는 불순분자로 찍혀서 왕따도 당하고 그런 상황에서 팀을 옮겨서 선수협의회 타결은 됐으니까 시합은 나가야 하니까 또 팀을 옮겼으니까 적응하고 훈련도 덜한 상태에서 동료들이 바뀌고 프로는 성적이 나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가서 적응을 빨리해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힘든 겨울이었죠.


▷그런 게 성적에도 영향을 미칩니까?

▶어느 정도는 오죠. 그런데 프로는 그런 걸 다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차피 각오하고 한 거기 때문에 그걸로 성적, 핑계는 프로선수들은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아무런 거 없이 성적이 잘 나온 선수도 있고 많이 떨어진 선수도 있었는데.


▷최 선수는 생각보다 프로선수 생활은 오래 못하셨죠?

▶오래 못한 것도 아니고 한 것도 아니고 그때 당시로는 10년은 더 했으니까 13년 정도 했으니까 짧게 했다고 볼 수 없지만 요즘이, 그때는 33살에서 35살 되면 은퇴를 해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저도 35살까지는 했기 때문에 크게 일찍 은퇴한 건 아닌데 요즘처럼 마흔까지는 그때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선수 관리도 지금처럼 체계적이고 않고. 은퇴하시고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은퇴하고 야구는 떠났습니다. 야구를 하면서도 계속 야구가 끝난 다음에는 무조건 야구 말고 다른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뭘 하고 싶으셨어요.

▶뭘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야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했었고 길이 아닌데 도망치긴 싫어서 끝까지 했던 거고 막상 나와 보니까 할 게 없더라고요. 1년간 방황도 하고 뭘 해야 할지 평생을 운동만 했으니까 노숙자 비슷하게도 지내보고 뭘 해야 할지 찾는데도 1년 걸린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하자는 거 막 할 수도 없고 나이가 마흔이 가까이 오기 때문에 고깃집 열어준다고 하라고 해도 할 수 없고 진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는데 1년 걸린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같이 찾아나가면서 운동했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생각도 드네요. 지금 프로야구가 40년을 맞았습니다. 관객이 좀 많이 줄어든 것 같은데요. 어떤 이유죠? 코로나 탓입니까?

▶제 입장에서는 줄었다고 생각은 안 하고 물론 100만 빠지고 600만이 넘어가더라고요. 코로나 영향을 딛고 보면 작은 수치, 우리나라 스포츠를 봤을 때 작은 수치는 아닌데 800만, 900만 간다는 상황에서 코로나 왔고 100만 빠지니까 줄어든다고 생각이 될지 몰라도 여러 가지 가격도 많이 올랐잖아요. 좌석수도 많이 줄었고요. 물론 안에 문제가 생기고 팬들이 등을 돌린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가 있고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위기는 아니고 조금 빠지는 중이고 지난 월요일부터 경기장에서도 관객들이 마스크를 안 써도 되는 상황이 됐으니까 영향을 미치겠네요. 지금 야구장도 자주 가고 경기도 자주 보세요?

▶요즘 신문 칼럼을 하나 쓰기 시작해서요. ‘최익성의 정면돌파’라고. 원래 제가 아웃사이더니까 바른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안에 있으면 못 보는 것을 보고 예를 들어 코로나 때 박성민 선수가 치킨을 먹다가 큰 징계를 받고 야구 은퇴를 해야 할 시기까지 몰렸을 때 후배로서 징계만 주지 은퇴를 시키려고 하냐.

잘못된 일이라는 것들을 쓸 수 있는 물론 화나요, 싫어요를 많이 받지만 그런 이야기를 누군가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칼럼을 쓰기 위해서는 야구를 아마야구가 됐든 프로야구든 관심 있게 봐줘야 내가 무슨 얘기를 해야 발전이 있을까. 안에서 못하는 이야기들을 해줘야 하니까 그런 관점에서 최근에 많이 보고 있습니다.


▷1위가 SSG죠. 처음 예상은 아니었는데 계속 성적을 유지하고 2등 LG가 엄청 쫓아왔어요. 결국은 어떻게 될까요?

▶LG가 워낙 상승세고 SSG가 많이 움츠렸는데 그래도 SSG가 계속 유리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야구는 정말 몰라요. 마지막에 바람 타는 팀이 보통 우승을 많이 하더라고요.


▷시리즈에서 2위가 됐더라도 결국은 포스트시즌에 가서 우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지막에 상승세를 타는 게 중요합니다.


▷상승세를 탄다는 건 어떤 의미, 선수들이 호흡도 잘 맞고 경기력도 좋아지고, 실제로 뛰는 분들 입장에서요.

▶상승세는 연승이죠. 연승이 되면 상승세를 타고 그러면 승리가 많아지는 거죠. 2연승, 3연승, 4연승 달리면 상승세가 지는 게임이 많이 없어지니까.


▷한화이글스에서 우승하실 때 어떨 때 연승을 해요.

▶호흡도 잘 맞고 투수가 잘 막아주면 잘 치고 수비도 단단해지면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진다는 생각을 안 해요.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 않아요.


▷몸놀림이 가벼워지는 겁니까?

▶여러 가지 톱니바퀴가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야구는 야구 자체의 실력도 있는데 멘탈도 중요한 종목 같아요.

▶멘탈이 엄청 많죠. 야구는 실패가 많기 때문에 멘탈이 큽니다. 제일 크다고 봅니다.


▷경기 시작하기 전에 파이팅하고 누가 홈런이라도 치면 하이파이브 하는 게 멘탈과 관련된 것일 수 있겠네요.

▶팀워크죠. 결국은 내가 좀 못하면 다른 선수가 커버를 해줘야 하니까. 내가 4타수 5안타 치더라도 투수가 잘 던지면 이길 수 있고 투수가 못 던져도 타자가 공격력이 좋아져서 뒤집을 수 있고 이게 상승세의 밸런스죠. 내가 못하면 저 친구가 못한 걸 대행하고 저 친구가 못하면 내가 대행하고 이게 맞아 떨어지면 이기게 되는 거죠.


▷야구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는 게 많네요. 인간사나 사람 사귀는 방법, 사업하는 방법도 일종의 야구의 원리들이 담겨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청 크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대학 때까지 야구를 했거든요. 주장을 하고 거기서 얻은 어릴 때 30명의 리더가 되는 건 쉽지 않잖아요. 야구부원은 30명인데 중학교, 고등학교 때 리더가 30명을 통솔하는 거잖아요. 그런 게 어릴 때부터 교육이 밑에 애들 어떻게 다루고 감독한테는 어떻게 대해야 하고 팀을 이끄는 것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숙달되는 리더십이라고 할까요. 야구에서 인생 여러 가지가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다양하게 했습니다. 첫 번째는 탤런트로 데뷔도 했고 MBC미니시리즈 나가서 1년 정도 하다가 그 길이 아닌 것 같아서 나와서 결국은 스포츠 쪽에 책도 쓰고요.


▷야구에 대한 책입니까?

▶제 삶에 대한 책을 써봤습니다. 7개 구단을 다니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구단을 다니게 됐고 남들하고 조금 이성엽 선수나 송진우 선수 야구 얘기가 아닌 다른 스토리가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거를 스토리화 시켜서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책을 썼고 독립야구라고 그러다 보니까 계속 안 되는 애들 기회를 다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독립야구연맹도 만들고 독립구단도 만들고 야구육성사관학교라고 야구가 아닌 과정을 가르치고 멘탈을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고 싶어서 그런 형태의 학교도 만들고요. 다큐영화도 만들고.


▷영화를 제작, 감독?

▶두 개 다 했습니다. 출연도 하고요.


▷이제는 선수 말고 최익성 대표님의 활약, 활동 같은 게 후배 선수들에게 미친 영향이 클 것 같습니다. 야구 아닌 비슷하지만 칼럼을 쓰는 건 야구에 대한 칼럼을 쓴다고 하더라도 다른 일인데요.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 계기, 할 수 있는 이유 동력이 궁금합니다.

▶저는 마음 가는 대로 많이 하거든요. 야구도 떠난 이유가 야구를 평생 했는데 떠나기 쉽지 않았는데 마음이 계속 다른 걸 해보자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나와서 뭘 잘할 수 있는지 봤을 때 그런 것들이 떠올랐고 하다 보니까 운동선수에 대한 편견, 야구선수들에 대한 편견이 있더라고요.

세상을 살다 보니까 그걸 깨고 싶더라고요. 네가 할 수 있겠냐, 네가 뭔데 영화를 만드냐, 책을 쓰냐. 비아냥대는 듯한 것들이 내가 더 하게 만드는 동기여부, 이걸 하면 후배들이 그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기는 거잖아요. 지금 야구하고 나오면 코치 아니면 해설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해설은 제한된 자리잖아요.

▶맞습니다. 다양성, 꼭 프로가 아니더라도 어린 선수들 부모님들이 시킬 때 야구 선수 아니면 끝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있잖아요. 다양한 방법으로 야구에서 좋은 것만 배우고 나와서 작가도 될 수 있고 탤런트도 될 수 있고 오너도 될 수 있고 다양하게 할 수 있는데 그걸 직접 안 보여주고 하고 있지 않으면 말로만 끝나는 거니까 처음에는 약간 미친놈 소리를 많이 들었죠. 지금은 세월이 변하니까 이제는 사람들이 진정성을 많이 알아주더라고요.


▷최익성 대표 저니맨 대표 전 프로야구 선수와의 인터뷰였는데 열심히 동분서주하면서 이것저것 작업을 만들어 가는 과정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나중에 기회 되면 또 모셔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