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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석분 "효순 미선이 사건은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

cpbc 이주엽 기자(piuslee@cpbc.co.kr) | 입력 : 2020-05-06 18:34
▲ 효순미선평화공원 조감도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박석분 효순미선평화공원조성위원회 집행위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국민들 정성으로 추모비를 세워주자고 뜻 모아 땅을 사고 추모비 공사 시작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요구는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불평등 그대로 있다는 반증

효순 미선 사건이 불평등한 한미관계 바로 잡는 계기되길 기대

추모공원 기금 마련 활동이 지상파 방송을 통해 전달되지 못해 아쉬워

1억5천만원 예산 중 현재 6천만원 모금, 기초공사는 가능할 듯

무명의 시민들이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통장으로 기금 전해줄 때 가장 기억에 남아


[인터뷰 전문]

열다섯 살의 어여쁜 여중생들이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숨진 지 다음 달이면 벌써 18주기를 맞습니다.

18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효순미선 양을 기억하기 위한 평화공원 조성공사가 시작됐다고 하는데요.

효순미선평화공원 조성위원회 박석분 집행위원장 연결해 관련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박석분 위원장님, 나와 계십니까.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지난주에 효순미선 양을 기억하기 위한 평화공원 조성공사가 시작됐다고 하던데 그동안 평화공원조성을 위해서 고생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감회가 어떠십니까?

▶저희가 미군추모비가 그 현장에 하나 서 있었는데 2008년에 그게 훼손된 것을 발견하고 그리고 이거는 아닌 것 같다. 국민들 정성을 담아서 추모비 세워주자고 한 게 그때가 2008년이고 그 후 12년만이거든요. 12년 만에 우리 땅을 사서 공원을 조성해서 우리 추모비를 거기에다가 세운다고 생각하니까 사실 처음에는 실감이 잘 나지 않았는데 엊그제 기초공사 때문에 땅을 파 올리는 것을 보니까 그제야 울컥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지지하고 격려하고 동참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평화공원이 조성되는 곳이 어디입니까?

▶경기도 양주시 광정면 효촌리 543-3으로 주소가 돼 있고요. 사고현장입니다, 2002년 당시.


▷그렇군요. 2002년이니까 벌써 18년이 지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민들이 효순미선 양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효순미선 양 사건은 당시 기억들 하시겠지만 한미관계 불평등함을 온몸으로 다 느낀 사건인데요. 그런 문제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효순미선양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이 우리 국민들을 기만하고 무시한 사건이고 우리 국민들은 그 과정에서 말할 수 없이 수치와 굴욕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촛불을 들게 되었고 그 촛불투쟁은 대중적인 반미투쟁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고요. 미국에서 작전통제권을 돌려주겠다고 한 그런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지금도 여전하지 않습니까? 지금 방위비분담금협정이라든지 6조 원이나 내놓으라고 강압을 하고 있는데 이거는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국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런 문제가 바로 2002년 촛불처럼 우리 국민들이 다시 그런 자주의 평화의 힘을 보여준다면 극복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그런 의미로 효순미선 이야기는 잊지 말아야 되고 잊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공사 안전 기원의식 사진을 보니까 심미선 양의 아버지께서 술 대신 음료수로 딸의 넋을 위로하는 모습이 언론에도 나왔던데 마음 짠하게 다가오더군요. 효순미선 양 부모님들 모진 세월을 지나오셨을까요. 근황을 어떻게 듣고 계십니까?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잊고 싶은데 잊을 수 없는 이미 그 효순이나 미선이는 부모님들의 딸이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딸이 돼버렸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 긴 세월동안 지켜 준 시민들께 감사하다고 인사하셨고요. 최근에도 뵙고 인사 나눴는데 미선 양 아버님 같은 경우는 이 사건이 불평등한 한미소파 개정의 밑거름이 돼서 국민이 떳떳하게 나가는 지름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고 효순 양 아버님은 제2, 제3의 효순이 미선이가 생기지 않도록 힘을 실어 달라. 아이들의 한을 달래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착공식이 지난해에 열렸으니까 실질적 공사에 들어가기까지는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는데 공사기금 마련하느라 어려움이 참 많으셨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어요.

▶국민적인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러긴 하겠지만 이런 소식이 공영방송등을 통해서 전 국민적으로 홍보가 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고 만약에 공중파 등을 통해서 홍보가 됐다면 2002년 당시에 촛불에 참여한 분들이 더 많이 이 모금에 참여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못하니까 주로 SNS을 통해서 홍보를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노동이나 인권현안보다는 덜 시급한 게 아니냐. 이렇게 생각이 드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공원은 정말 순수한 민간차원에서 자주적으로 기금을 모아서 추진되고 있거든요. 미군 범죄로 인해서 희생된 한국인들을 위한 평화공원으로는 처음입니다. 그래서 코로나로 인한 여러 가지 고통이 있지만 어쨌든 올해 공원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사회 각계각층에서 관심 갖고 참여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예전에 저하고 인터뷰 하셨을 때 착공식 이후에 기금 부족으로 공사가 중지된 적도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공사비는 얼마나 들고 현재까지 모인 기금은 어느 정도나 됩니까?

▶전체 한 1억 5,000 정도 예상하고 있고요. 작년 착공식 하고 나서 모금된 게 6,000만 원 정도입니다.


▷아직도 많이 필요하군요.

▶공원 모양을 내줄 벽과 바닥 공사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벽 내부 그림이나 벽화 여러 가지 조경, 기록, 조형 이런 것들은 제작이 돼야 하는데 이건 이제 모금을 해야 하고요. 물론 지금 공사 시공이나 이런 부분들을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능 기부, 기술 기부 해서 경비를 많이 줄이고 있고 벽화나 이런 것도 예술가나 작가들이 재능 기부 해주셔서 경비가 최대 한 줄기는 하겠지만 자재나 재료비 이런 건 어쩔 수 없네요.


▷시민들의 순수한 민간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공원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는 그 의미는 적지 않아 보이는데 그 과정에서도 다양한 사연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만 가장 감동적인 거는 무명의 시민들이 통장에 진상규명, 잊지 않을 게. 소파개정 이런 것으로 돈을 보내주시는 경우예요. 이런 분들은 이름은 알 수 없지만 효순미선을 통해서 정말 이 땅의 자주와 평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소망, 어린 감정, 그 진정성은 너무나 분명히 전해집니다.


▷타인의 고통을 통해서 공감할 수 있는 공감능력을 발휘하는 분들이 많으시죠. 공원이 운동화 모양을 본 떠서 설계가 됐다고 들었습니다만 운동화 모양의 공원으로 만드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당시 사고 직후에 현장에 운동화 한 짝이 벗겨져서 땅에 뒹굴고 있었어요. 이 운동화는 사실 어린 여중생들의 피어보지 못한 꿈이라고 할까. 그런 걸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침 참 신기하게도 저희가 매입한 부지 모양이 굉장히 복잡하게 생겼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이 운동화 한 짝을 들어가게 하니까 설계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참 신기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 두 소녀의 꿈을 상징하는 운동화 모양으로 공원을 꾸미자. 두 소녀의 꿈이 위대한 촛불의 힘으로 승화되는 그런 공간으로 조성해 보자. 그렇게 논의가 돼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운동화 모양의 공원, 구체적으로 어떤 조형물들로 어떻게 꾸며지게 되는 겁니까?

▶운동화 모양으로 테두리 벽을 세웁니다. 그리고 공원 안쪽에는 지난 8년 동안 저희가 시민추모비 만들어 놓고 이거를 어디 자리를 못 잡아서 맨날 트럭에 싣고 다녔거든요. 시민추모비를 세우고 자주평화통일을 횃불로 승화된다, 그 촛불이. 효순이 미선이로 시작된 작은 촛불이 자주평화통일의 횃불로 승화된다는 의미의 조형물을 이번에 새롭게 제작해서 공원 안에 세우려고 하고요. 그리고 벽 안쪽에는 사건 경과를 기록하려고 합니다.


▷잊지 않도록 생생한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거네요.

▶맞습니다. 그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촛불이 켜진 사건이잖아요. 시청광장을 메운 사건이기 때문에 촛불벽화를 그리려고 합니다. 그다음에 추모객들이 와서 촛불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매달려고 하고 그다음에 지난 18년 동안 부지매입, 시민추모비건립 등등 해서 많이 모금을 해주신 분들, 단체이름을 다 벽에 기록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효순미선양 사망 18주기가 6월 13일인데요. 아마 이날까지 평화공원 조성을 마칠 계획이라고 하던데 이제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아서 공사기간이 너무 촉박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웬만큼 다 가능할 것 같아요. 기후나 장마나 이런 문제가 없다면 해보려고 합니다.


▷올해 효순미선 양 18주기는 평화공원에서 진행되는 겁니까? 추모제는 어떻게 계획하고 계세요.

▶아무래도 완공식을 겸해서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고요. 공원조성이 많은 분들의 지지와 성원, 2002년부터 지금 부터 이 과정을 이끌고 참여했던 분들이 참석해서 현재 또는 과거뿐 아니라 미래 한미 관계에 대한 소망도 담는 그런 주권을 회복하고 자주를 실현하려는 국민들의 의지가 꺾이지 않았고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행사로 치르려고 하고 있습니다.


▷효순미선 평화공원이 완성이 되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활용됐으면 하고 바라십니까?

▶우선 효순미선 양이 영원히 안식하는 그런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소녀의 억울한 죽음이 잊혀지지 않도록 청소년들이 주로 평화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사고 당시 효순미선 양이 15세였기 때문에 그 또래의 청소년들이 현장학습 같은 방식으로 이 사건을 기억하고 촛불의 의미와 과제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공원을 찾은 추모객들이 진상규명을 위한 과제가 남아있다.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극복하고 주권을 실현해야 한다. 그리고 자주평화통일을 꽃피워서 효순미선 양의 꿈을 승화시켜 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분들이 오셔서 생각도 가다듬고 힘도 얻는 그런 공간이 됐으면 참 좋겠습니다.


▷6월 13일에 꼭 공원이 완공이 돼서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찾아서 평화의 소망을 역사적으로 느껴보는 그런 장이 되었으면 하네요.

박석분 효순미선평화공원조성위원회 집행위원장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