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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승구 신부 "가난 구조적 원인 없애려면 섬김·나눔 실천해야"

cpbc 윤재선 기자(leoyun@cpbc.co.kr) | 최종업데이트 : 2019-11-15 18:34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나승구 신부 /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이들의 희망은 하느님,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 이유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는 사람들, `새로운 노예화`

주거권은 가난한 이들의 생존 위한 기본 토대

교회가 가난한 이웃 돌보는 데 나서고 사회에 촉구해야

빈곤의 구조적 원인 없애려면 섬김과 나눔 실천해야


[인터뷰 전문]

이번에는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나승구 신부님 전화로 연결해서 우리 사회 고통스러운 가난의 현 주소를 짚어보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나승구 신부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내도록 선포한 배경이 따로 있는 건가요?

▶왜 굳이 연중 33주일로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정하셨는지는 저한테는 안 가르쳐 주셨는데요. (웃음) 가난한 이들의 날을 선포하신 배경은 분명 우리 사회에서 가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이 있다는 것이죠. 연중시기를 마감해가고 위령 성월을 보내고 있는 이때에 인간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와 함께 우리 교회의 처지와 세상의 상황에서 가난한 이들이 아주 철저하게 배제돼 있다는 안타까움을 드러내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느님의 품 안에 안긴 모든 주체들이 그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소홀히 여겨지지 않고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뜻에 이르고자 하신 그런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가련한 이들의 희망은 영원토록 헛되지 않으리라.’ 시편 9장 19절의 말씀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제3차 가난한 이의 날`을 맞아서 발표한 주제던데요. 가련한 이들,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은 어떤 의미일까요?

▶대부분 가난한 이들, 가련한 이들에게 희망은 없다고 생각하죠. 가진 게 없는 이들은 희망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가련한 이들,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은 그야말로 구원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봤을 때 가련한 이들은 늘 하느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고 하느님께 호소하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권력과 재물을 바라본다면 권력과 재물로부터 버림받은 가난한 이들은 오히려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이죠. 그래서 신앙적으로 본다면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은 하느님이십니다. 이게 바로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돼야 한다는 이유이고 교회가 하느님을 희망으로 삼는 것이 그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리포트에서도 전해드렸습니다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 세기가 흘러도 빈부격차가 변함이 없다고 지적하시면서 일자리가 없어서 방황하는 젊은이들, 온갖 폭력의 피해자들, 이민자, 노숙자, 소외된 이들까지 새로운 노예화 문제를 지적하셨어요. 오늘날 수많은 형태의 `새로운 노예화` 지적을 신부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노예란 말 그대로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죠. 요즘에 자신의 의지 그것도 하느님께서 주신 선한 의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우리 중에 얼마나 될까 생각됩니다. 자신이 성장하고 하느님께 닿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성공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 자체로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동떨어진 것이죠. 원치 않는 곳에서 원치 않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바로 노예가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별히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게 없어서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게 얼마나 불행한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가난한 이들을 끌어안고 함께 살아가지 않는 한 돈과 권력을 가진 분들의 행복 또한 진짜 행복은 아닐 것 같아요. 노예로 사는 자들뿐만 아니라 노예를 부리는 사람 역시 자유롭지 못한 영혼이기 때문이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다는 성경 말씀이 떠오르는데요. 신부님, 이 세상의 약한 것, 가난과 궁핍이 가진 힘은 뭐라고 보십니까?

▶아까도 말씀을 드렸는데요. 하느님의 눈으로 본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분명하고 절실하게 드러나죠. 당신만 바라보는 사람들이니까요. 하느님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갖고 있는 힘은 역설적으로 오히려 하느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불행히도 가난한 사람들도 부를 축적함으로써 가난을 유발한 사람들도 힘이 주는 성실한 기쁨을 바라보지 못하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죠.


▷현대사회에서 가난의 문제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하면 주거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홍보책장 맨 첫 장에도 ‘삶의 자리는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라는 말이 있던데요. 가톨릭교회에서 말하는 주거권 이거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바잉(buying)이 아니라 리빙(living)이라는 뜻이죠. 참새에게도 집을 마련해 주시고 제비들에게 새끼 치는 둥지를 마련해 주신 하느님이시잖아요. 인간이 삶을 이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의식주라고 하는데 그 의식주 중에서 주, 자신의 생존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되죠. 이 토대가 무너지면 생명을 지킬 수 없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지키는 토대로 여겨야 한다는 바탕에서 저희는 주거권을 기본권으로 여겨야 한다고 권장합니다. 삶의 자리가 투기나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될 때 정작 그 자리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쫓겨나는 불안한 생활이 지속 되는데요. 이것을 막아내고 집이 편안한 쉼과 충전의 자리로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빈민사목위원회도 우리 사회 곳곳의 주거 취약계층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계십니까?

▶늘 부족하기는 하지만 교회가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는 세상의 공동체잖아요. 세상 사람들과 함께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데요. 그래서 정치공동체와 지역공동체에 끊임없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삶을 살아가자고 요구하는 한편 저희도 우리 교회도 역시 우리 바로 옆에 있는 이웃들을 돌보는 일에 신자건 신자가 아니건 함께 나서야 한다고 교회 내부에도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빈곤과 관련한 다른 사회단체들과 연대해서 특별히 쪽방이라든지 노숙을 하시는 홈리스라든지 주거문제로 어려운 처지에 계신 분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저 주거권 보장, 법적으로는 돼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아서 가톨릭교회가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고 세입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에도 함께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교회 역할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어요?
취약한 주거환경에 대한 문제 어떻게 연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는 물론 우리 주변의 이웃을 돌보는 역할을 계속 해나가면서도 사실은 지금 최저 임금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아주 주거 상태가 안 좋은 사람들. 전세, 월세 사람들 문제가 아주 심각하죠.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법적으로 안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교황께서는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빈곤의 구조적 원인을 없애고 가난한 이들의 온전한 발전을 촉진하도록 일하라고 권고를 하신 바 있는데요. 그런데 과연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어떻게 해야 빈곤의 구조적 원인을 없앨 수 있을까. 신부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조적 원인을 없애는 건 그야말로 섬김과 나눔이죠. 우리 교회의 삶의 방식이 끊임없이 섬김과 나눔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섬김과 나눔을 통해서, 내가 축적하는 힘이 내가 축적하는 권력과 재력이 나만의 노력과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것이 구성되면서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재화의 공동사용권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해야 될 것 같습니다.


▷혹시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서 교회와 정부 또 교회와 사회가 연대한 모범사례 같은 게 있습니까?

▶몇 가지 사례가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부산지역에서 일어난 일인데 1964년에 부산교구가 오스트리아 부인회의 원조를 받습니다. 자선아파트를 지어서 빈민들의 거처로 내어준 적이 있고요. 세계교회 차원에서 보면 호주 교회 같은 경우는 교회와 수도권에 땅을 사회 주택의 부지로 내주고 정부와 협조해서 사업을 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빈민사목위원회도 서울시와 함께 협약을 맺어서 특히 아동주거빈곤 아동들에게 서울시에서는 주택을 제공하고 저희는 이에 따른 보증금, 이주비 등을 마련해 주는 그런 협약도 맺은 적이 있습니다. 단지 이주뿐만 아니라 교회 지원을 통해서 이웃을 돌보는 일도 계속해서 필요하다고 봅니다.


▷끝으로 그리스도 신앙인들에게 가난을 선택하는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반적으로 가난을 선택한다면 사람들이 다 비웃죠. 부자 되는 세상에서 가난을 선택하는 거는 어리석은 것이라고. 그런데 김수환 추기경님도 그러셨듯이 바보로 살아가는 것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잖아요. 세상에 대해서 가장 강력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은 내 것을 축적하고 안전한 성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에서 스스로를 내려놓고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힘있는 신앙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이신 나승구 신부님과 우리 사회의 가난, 빈민사목에 관한 이야기 나눴습니다.

신부님, 오늘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