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학규 "남영동 대공분실, 민주주의 배우는 곳으로 거듭나야"

2018.01.11


* 김학규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 cpbc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입니다> 인터뷰


[주요 발언]

"영화 <1987> 호응, 촛불혁명 때문 아닐까?"

"영화 상영 후 남영동 대공분실 방문객 급증"

"개헌, 여야 정치권 타협이나 야합 안돼"

"박종철 정신,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


[인터뷰 전문]

영화 <1987> 열풍이 뜨겁습니다. 1987년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을 다룬 영화죠.

영화가 사랑을 받으면서,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가 숨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되어 있는데, 이곳을 인권기념관으로 만들자는 국민청원이 줄을 잇고 있네요.

박종철기념사업회 김학규 사무국장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마침 돌아오는 일요일, 14일은 박종철 열사 31주기입니다.



▷ 사무국장님 안녕하십니까.

▶ 네, 안녕하세요.



▷ 요즘 말 그대로 영화 <1987> 열풍입니다. 사무국장님도 영화 보셨죠?

▶ 네, 저는 단체관람까지 포함해서 3번 봤습니다.



▷ 벌써 3번이나요.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 저는 데모대가 백골단 추적을 받을 때 잘 생긴 청년하고 연희를 신발가게 아주머니가 챙겨주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게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 그건 여성들이 좋아하는 장면으로 알고 있는데.

▶ 하하. 그래요? 저도 사실 비슷한 경험이 있었거든요. 저는 어떤 집으로 숨어 들어갔다가 그 집에서 밥까지 얻어먹고 나온적도 있었는데요. 그 장면에서 저도 87년 그때 기억이 절로 나더라고요.



▷ 정말 사실적인 장면이었던 거군요.

▶ 네. 그런데요. 영화 <1987>에서 친구 박종철이 고문 당하는 장면, 또 부검 당하는 장면 이런 게 너무 적나라하게 나오니까 사실 그 장면에서는 정말 보기 힘들었습니다. 부검할 때는요. 마치 제 살이 도려나가는 그런 기분이었죠.



▷ 저도 조금 그 장면이 보기가 힘들더라고요. 정치인은 물론이고요. 지금 세대를 아울러서 영화에 호응을 보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보세요?

▶ 지난해 촛불혁명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촛불혁명에 참여하면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건지. 세대를 떠나서 그걸 뼈저리게 온 국민이 절감하는 과정이 있었던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사무국장님께서 박종철 열사와 같은 대학 동기로서 학생운동을 함께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네.



▷ 영화를 보고 친구가 더 많이 생각이 나셨을 것 같아요.

▶ 네, 많이 생각났죠. 마지막 만났던 기억, 고문 당하는 기억, 이런 게 많이 떠올랐었죠.



▷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에 수많은 박종철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게 사실입니까?

▶ 그 표현이 상당히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저도 전기고문까진 아니지만 물고문까지는 당해봤었거든요. 물론 남영동 대공분실은 아니었고요. 지금도 사실은 이발소에서 머리 감을 때, 옛날 생각이 많이 나기도 해요. 왜냐하면 이발소에서 머리 감을 때 보면 샤워기에서 제 머리로 물이 쭉 떨어지는 것이잖아요. 미용실과 이발소의 차이인데요. 그 짧은 순간에 숨이 턱 막히면서 옛날 생각이 좀 나고 그러죠.



▷ 트라우마가 있으시군요.

▶ 네. 그리고 제 동아리 3년 선배 가운데 한 분은요. 제가 2학년 때이니까 1985년에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던 중에 충북 영동 거기 황간역 있는데 그 근처에서 경부선 철길에서 시신으로 발견되기도 했었죠. 당시에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잡히면 고문을 당할 수 있다.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항상 했었고요. 그러면서도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을 학살하고 들어선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을 꼭 물리쳐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두려움을 무릅쓰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던 그런 시절이었죠.



▷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가 숨진 남영동 대공분실이 영화에 자주 나오는데요. 대공분실 존재를 전혀 몰랐다,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다는 분들도 지금 많습니다. 사무국장님이 기억하시는 남영동 대공분실은 어떤 곳입니까?

▶ 제가 남영동 대공분실의 실체를 처음 안 것은 1985년, 그때 김근태 당시 민청련 의장이 남영동에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였고요. 정말 무서운 곳이다. 거기 한번 잡혀 들어가면 몸 성히 나오기 힘들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었죠. 그리고 또 요즘은 제가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아오는 분들을 안내하면서 새삼 드는 생각이요. 이 건물을 지은 김수근 건축가, 이 건물을 이용했던 대공수사요원들 정말 무섭고 치밀한 사람들이다. 이런 생각도 종종 하게 되죠.



▷ 남영동 대공분실 찾는 분들 많아졌다고 들었습니다. 얼마나 늘었습니까?

▶ 이전하고 비교하면 비교가 안 되게 이번 영화 <1987> 계기로 상당히 많은 분들이 지금 오고 있고요. 어떤 분들은 방금 영화를 보고 왔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 영화 보자마자?

▶ 네. 보고선 그 느낌 그대로 오셨는가 봐요. 오시는 분들은 상당히 많이 놀라죠. 5층 조사실의 좁은 창문, 사실 이렇게 고문을 했던 현장이 있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 사실 남영동 대공분실 밖에 없거든요. 나선형 계단 그리고 박종철 열사가 돌아가신 509호실. 거기는 욕조도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요. 옛날 8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거든요. 509호실은. 이런 걸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치밀한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 그리고 영화가 전혀 과장된 게 아니구나 이러면서 다들 놀라시죠.



▷ 지금 남영동 대공분실이 경찰청 인권센터로 운영되고 있잖아요.

▶ 그렇죠.



▷ 박종철기념사업회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으로>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계시던데. 새해부터 국민청원도 받고 계시고요. 이곳을 인권기념관으로 바꿔야 한다고 보시는 이유는 뭔가요?

▶ 30년 전 6월 민주항쟁이 가장 아쉬운게요. 4.19 혁명은 이승만을 몰아냈는데, 6월 민주항쟁은 4.19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일어났으면서도 전두환 군사정권을 몰아내지 못하고 6.29 선언으로 타협했다는 거잖아요. 그때 만약 전두환 군사정권을 몰아냈으면 민주주의와 인권탄압의 상징인 남영동 대공분실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경찰의 손에서 벗어나서 시민사회가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탈바꿈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요. 당시에 참으로 진한 아쉬움 이런 게 남는 게 30년 전인데요. 지금 상황에서는 촛불혁명도 일어났고, 정권교체도 했고, 여전히 적폐청산의 목소리도 상당히 높은 상황인 거잖아요. 이제라도 뒤늦게나마 밀린 숙제를 하는 심정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이 역사적 의미, 그 무게에 합당하게 재배치되어야 한다. 그런 생각을 좀 하게 되었고요. 가해자인 경찰이 운영하는 경찰청 인권센터가 아니라 시민사회가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을 세워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배우고 다짐하는 그런 시민들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대통령 결단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하게 된 것입니다.



▷ 국민청원 언제까지 계속되는 거죠?

▶ 이게 한 달 하게 되어 있어 가지고 2월 1일까지 진행할 예정이고요. 20만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보니까 만만한 숫자가 아니어서요. 이 방송을 듣는 분들도 인터넷에서 <국민청원 인권기념관> 이렇게 치고 들어와서 청원에 꼭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지금 정치권의 여야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영화 <1987>을 단체로 관람하면서 개헌 논의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정치인들 행보는 어떻게 보십니까?

▶ 30년 전을 기억하면서 그때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직선제 개헌이 된 거니까, 이번에 촛불혁명도 일어났고 이런 상황에서 촛불혁명의 결과가 헌법에 반영되어야 한다. 이것은 당연한 요구인 것 같고요. 다만 이게 30년 전 같이 국민들은 투쟁만 열심히 하고 결국에는 개헌하는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이 타협하는 식으로 야합하는 식으로 되어서는 안 되겠다. 이번에는 국민참여 개헌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이 확장되는 이런 방향에서 개헌이 된다면 그건 정말 의미있는 일이겠다. 꼭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오는 14일이 박종철 열사 31주기입니다. 관악구에서 박종철 거리도 조성한다고 하던데요. 추모행사 일정이 이번에 어떻게 되죠?

▶ 13일에는 관악구에서 박종철이 마지막으로 하숙했던 집 앞길을 박종철 거리로 지정해서요.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배우는 장소로 만들겠다. 이런 의미를 담아서 선포식을 하고요. 저희들은 14일이 기일이니까 기일에 맞춰가지고 11시에는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서 추모제를 진행하고요. 2시 30분에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옮겨와서요. 509호실에서 헌화도 하고, 7층 강당에서 박종철 장학금 전달식도 할 예정입니다.



▷ 30년이 넘게 흘렀는데, 우리 국민이 꼭 기억해야 될 박종철 열사의 정신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이번에 모든 분들이 촛불혁명에 참여하면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절감하셨을텐데요. 박종철 정신이라고 한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연대정신, 선배와의 약속을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신의. 이런 게 박종철 정신의 핵심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고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성숙 이런 것도 한번 꼭 되새겨봐야 하는 그런 정신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 박종철 열사한테 지금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 이번에 저희들도 30주기 때 이러저러한 정리사업도 하고, 책도 내고 했었는데요. 네 죽음이 결코 헛된 게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너의 역할, 죽음이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고요. 너는 결코 죽은 게 아니라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있다. 바로 희망의 촛불, 연대의 촛불 이런 것으로 우리 곁에 살아있다. 이런 이야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 너무 보고 싶으시죠?

▶ 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보고 싶네요.



▷ 지금까지 민주열사 박종철기념사업회 김학규 사무국장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이른 아침 인터뷰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김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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